말로만 듣던 대한민국 '속기의 대가'라는 원로 남상천동문(법률학과)을 만나뵈러 가는 길은 왠지 모르게 껄끄러웠다. 입춘이 막 지난 터라 캠퍼스는 봄기운이 완연했지만, 가는 겨울이 아쉽고 꽃샘추위가 오려는지 눈발이 히끗히끗 날리고 있었다. 함께 나선 웹진 '스큐진' 편집장 이기순씨에게 '속기(速記)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70년대 학번인 나도 모르는데 90년대 학번이 알 수 있을까. '그게 무슨 학문이에요?'

"잘 오셨습니다" 정중하게 반기는 남상천(南相天)동문은 조금도 56학번답지 않았다. 건장한 키(178cm)에 혈색까지 좋아 60대 초반처럼 보이니 노익장이란 말이 무색할 뿐이다. 조심스레 '춘추'를 여쭸더니 1929년생이란다. 원 세상에! 우리 나이로 76세일 줄이야.
 
 ★ 60∼70년대 실업계고교속기교과서 집필…지도교사 양성 주력 ★
 
속기는 글을 빨리 쓰는 기술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정색을 하며 속기는 단순한 skill이 아닌 '당당한 학문'이란다. 1956년 대학 1학년 27세 나이에 5년여동안 고생하며 창안한 '남천식 속기법'을 발표했다. 그후 농림부 서기관, 농협중앙회 검사부장등 20여년간 공직에 근무하면서도 속기선생님이 되어 전국을 돌며 명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63년 각고의 노력 끝에 문교부령으로 '속기'가 실업계 고등학교 교과과정으로 제정, 73년 문교부검인정 교과서로 채택된다. 58년부터 79년까지 21년간 24회에 걸쳐 속기지도교사 1060명을 양성했으며 67년도엔 128개 고교에서 8천여명이 지도를 받았다. 72년엔 문교부령으로 속기실무능력 검정고시 규정을 제정 , 1∼7급 급수증을 주었으며, 속기실기종합경진대회도 개최했다. 그 당시 실업고 교원의 교감승진 자격요건에 속기과정을 반드시 수료하도록 되어 있었다. 정규교육을 못받은 학생들을 위한 무료속기 강습회도 개최, 10여년간 1500여명을 지도했다. 노동청 인가를 받은 속기공공직업훈련소가 개설됐는가 하면, 육군 주특기중에 '속기'가 있었다. 덕분에 서울시 경찰국장상, 노동청장상, 내무부 치안국장상, 문교부장관상등 기관장상도 수없이 받았다.
 
★ 80년대 식품산업 투신…보리· 현미등 쪄서볶는 가공법 특허 '빅히트' ★
 
그러다 南동문은 81년에 일생 일대의 변신을 하게 된다. 돌연 식품가공사업에 뛰어든 것. '대경산업'(大耕産業)을 창립, 보리가공방법에 대한 특허를 출원한 후 해태음료에 '보리텐'원료를 가공 납품하게 된다. 한때 엄청난 특수를 누렸다. 이어 또한번 히트를 친 '아침햇살' 원료인 현미의 가공방법 발명을 특허, 웅진식품에 현재까지도 납품이 계속되고 있다. 고유의 맛이나 향기를 상하지 않고 보리나 현미등의 원료를 쪄서 볶는 비법은 그만이 알고 있다. 회사를 발전시키고 경영도 할만큼 했다고 생각한 南동문은 2001년 또다시 변신을 시도한다. 잘 나가던 회사를 미련없이 매각, 在野라는 제3막의 삶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바빠 잊고 있었던 속기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20년중반에 발표한 기발한 속기법, 어느새 반세기가 다 되어간다. 강산이 바뀐 지 다섯 번. 무상한 게 세월인지라, 그동안 세상은 완전히 컴퓨터-인터넷 세상으로 바뀌었다.

현재 전국에 수필속기학원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 보기가 힘들다. 오프라인은 온라인에 가려 완전히 구닥다리로 전락된 지 오래. 속기를 배워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으면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로 몰아붙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멈출 수 없었다. 어떻게 만든 속기법인데, 자기가 죽으면 속기라는 건 이 땅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고 생각하니 밤잠을 잘 수 없었다. 남의 말을 받아쓰거나 빠른 기록을 하는 데에는 속기만한 것이 없다. 한마디로 속기는 '초고속 메모법'이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속기는 도구를 가지고 다녀야 하지만, 수필(手筆)속기는 종이 한 장과 필기구(펜 한 자루)만 있으면 된다. 판서(板書)한 강의내용을 적는다거나 일상생활에서 쓰는 일기장이나 수첩의 기록, 탁상일기나 메모등을 할 때 속기만한 것이 없다는 게 그의 평생의 지론이다.
 
★ 속기교육에 여생 건 노익장 열정에 숙연 ★
 
이제 그의 목표는 전국민대상의 '속기 보급'이다. 하루종일 아니 일주일내내,완전한 소리글자인 한글의 특성을 가장 빠르게 표기할 수 있는 속기(10분에 3000字기록 )를 일반대중들이 배워 너도나도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빠져있다. 1957년 '남천속기연구소'를 설립한 이래 오늘날까지 계속 사재를 털어 뮤료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이다. 현대 물질문명에 쪄들은 사람들은 대뜸 장삿속으로 치부해버리는 나쁜(?) 버릇이 있다. 따라서 오해도 따른다. 그만큼 오해도 많이 받았다하지만 그의 진심을 알고나면 한순간 숙연해진다.
南동문은 현재 대학교 교양과목으로 '속기학 강좌'를 개설,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는 열정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 시작이 2001년 5월 성균관대에서 있은 '속기 특강'이었다. 130여명의 학생들이 불과 4시간만에 기본속기를 익힐 수 있으므로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상형문자나 본 듯 어렵게 느껴졌는데, 의외로 배우기 쉽다니 무슨 요지경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수강료도 교재도 모두 무료였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란다. 이에 고무되어 2002년 천안대에서 국내 대학중 최초로 '속기학'을 교양과목으로 채택했으며, 2004학년도엔 성균관대와 홍익대에서 1학점, 2학점 교양과목강좌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의 성에는 조금도 차지 않는다. 3년내 서울의 20여개 대학에 교양과목으로 채택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고려대, 덕성여대, 국민대등에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南동문은 속기가 이제 직업으로 되기는 진작에 시루엎었다고 판단한다. 단지 일반인들이 메모를 하거나 일기등을 쓸 때 널리 써주기만을 원하는 것이다.

속기라는 단어만 나오면 목청높여 예를 드는게 아래의 문장이다.
 
《13자인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를 한자를 섞어쓰면 95획, 한글로 쓰면 52획이다. 그러나 속기 문자를 쓰면 단 13획이면 된다. 그것도 약법(略法)을 배우면 6획, 최종에는 3획으로 충분하다.》
스피드(speed)시대에 이만한 절약이 어디 있을까. 그가 주창한 속기의 3대원칙은 너무나 간단명료했다. 1)한 음절을 한 획으로 적기 2)소리를 적기 3)가로로 쓰기이다. 실제로 몇 시간만 할애하면 익히게 될까. 의문이다. 내달 열리는 특강에 참가하자고 편집장과 뜻을 같이 했다. 그 꼬부랑글씨가 무엇이든 간에 원로선배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못할 게 무어랴.
 
★ 모교에 10억대 재산 유증…"부설연구소 존속"희망 ★
 
 
南동문은 현재 살고 있는 10억대의 저택을 사후 모교에 기증(遺贈)하기로 심윤종 전총장과 약속했다고 한다. 표구된 졸업장을 보여준다. 단기 4292년, 1959년이다. 총장 이선근박사. 요즘의 A4용지 크기가 아니고 전지크기, 당연히 붓글씨다. 마치 고색창연한 조선조 임금의 교지같다.

건학 605년 민족 정통대학 성균관의 자리매김에 새삼 숙연해진다. 南동문의 마지막 소원은 '남천 속기연구소'가 모교의 부설 연구기관으로 영구히 존속하는 것이다. 그의 염원이 어떤 식으로든 실현되었으면 좋겠다.
돌아오는 길, 택시까지 잡아주며 돌아서는 그의 모습은 흡사 거인의 풍모였다. 열정이 있기에 南동문의 삶은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글 : 대외협력팀 최영록 홍보전문위원
 
 
 
 
 
 
‘速記 대부’ 남상천씨 연구·장학금 10억 기부
 
‘한국 속기(速記)의 대부’격인 남상천(75)씨가 젊은 학생들에게 속기를 전수하기 위해 강단에 선다.남씨는 후학들이 속기를 연구하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10억원대의 저택을 모교인 성균관대에 기증했다.
디지털 세대에게 속기 전수
남씨는 22일 “펜 한자루와 종이 한 장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초고속 메모’가 가능하다.”고 말했다.“컴퓨터와 붙어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한다.성균관대 법률학과 56학번인 그는 속기가 실업계 고교 정규 교과과정으로 지정된 70년대까지 농림부와 농협중앙회에 근무하면서 속기 전도사로 전국에 이름을 떨쳤다.대학 입학 직후 ‘남천식 속기법’을 만들어 보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공직을 청산하고 사업에 뛰어들어 20년 남짓 ‘외도’를 했다.1983년 음식산업에 뛰어들어 ‘아침햇살’등 보리와 현미음료 제조기술로 특허를 출원해 ‘대박’을 터트렸다.‘이 정도면 됐다.’ 싶어 은퇴를 결심한 2001년 책장을 정리하다 우연히 색바랜 속기 교과서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없으면 속기라는 걸 기억하는 사람도 없겠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있어야죠.사업 성공한 것도 그걸 기반으로 속기학을 살리라는 하늘의 뜻이었구나 싶더라고요.”
모교에 장학금과 속기 부설연구소 기증
그는 그때부터 각 대학을 돌며 속기 강의를 맡겠다고 설득작업을 벌였다.20여개 대학에 속기 강의를 제안한 끝에 올 1학기 부터 성균관대와 홍익대에서 새로 개설된 속기학 강의를 맡게 됐다.성균관대의 경우 지난 20일 재학생 수강신청을 마감한 결과 60여명이 몰렸다.신입생 수강신청 기간인 이번 주에는 총 정원 80명을 훌쩍 넘길 것으로 학교측은 전망하고 있다.
남씨는 얼마전 부인(71)과 1남 2녀 등 가족들을 불러놓고 모교에 10억원대의 서울 양천구 목동 자택을 기증하겠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다.학교내 속기 부설연구소를 건립하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데 사용하기 위해서다.자식들이 서운해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남씨는 “속기를 배우겠다는 젊은이는 모두 내 자식”이라면서 “3년 안에 이들을 다 내 자식으로 만들 자신이 있다.”고 환하게 웃었다.
한 음절이 한 획,가장 경제적인 기록법
‘남천식 속기법’의 원리는 간단명료하다.한 음절은 한 획으로 표기한다.‘서울신문’을 한글로 쓰자면 총 20획이지만 속기로 쓰자면 4획이면 된다.또 발음나는 대로 표기한다.쓰이는 받침도 ‘ㄱ,ㄴ,ㄹ,ㅁ,ㅂ,ㅅ,ㅇ’ 7개뿐이다.발음이 같은 ‘낮’,‘낫’,‘낯’은 모두 ‘낫’으로 적는다.
속기문자의 모양은 빈도수와 관련이 있다.가로획을 쓰는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점에 착안,국어를 분석해 많이 쓰이는 문자일수록 가로()·대각선(/)·세로()획 순으로 기본모양을 만들었다.남씨는 “30시간만 배우면 강의나 대화 등 연설체 문장을 5분에 1600자까지 받아적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
 
 
 
 
 
 
 
[인물포커스]남상천씨 “네시간만 연습하면 速記일기 써요”
 
 
 
“속기(速記)에는 내 평생의 열정과 꿈이 녹아 있습니다. 누구나 익혀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만드는 게 내게 남은 유일한 숙제예요.”
 
한국 속기술의 원로인 남상천(南相天·75) 남천속기연구소장. 그는 ‘속기의 전도사’로 불린다. 최근 자판을 사용한 ‘컴퓨터 속기’가 보급되면서 손으로 기록하는 ‘수필(手筆) 속기’는 점차 설 땅을 잃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천안대를 시작으로 대학 수필속기 강의가 부활하기 시작했다. 서울 시내에서도 성균관대와 홍익대가 수필속기 강의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성균관대에서 ‘속기 지도자과정’을 열고 여러 학교를 찾아다니며 설득을 반복하는 등 남씨의 집념어린 노력이 이뤄낸 성과다.
 
“컴퓨터 속기에도 장점은 있더군요. 해독과정 없이 입력하는 그대로 한글 문서화된다는 점이죠. 그렇지만 수필속기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엄청난 장점이 있어요. 바로 ‘생활속기’라는 점이죠.”
 
그는 더 이상 속기가 ‘직업’으로 애호되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한번 취직하면 평생이 보장되는 속기계에서 새 인력이 진입하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됐기 때문.
 
그는 “이제 속기는 강의를 그대로 받아 적고, 떠오르는 생각을 빨리 메모할 수 있는 ‘생활속기’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남천식 속기법’을 창안한 것은 27세 때인 1956년. 한글 자모의 출현 빈도수까지 면밀하게 계산한 ‘과학성’ 때문에 편리한 속기법으로 곧바로 인기를 끌었다.
 
농림부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시간을 쪼개 속기 지도교사 강습회를 열고 ‘속기’를 실업계 고등학교 교과과정으로 채택하게 하는 등 보급에 온 힘을 쏟았다.
 
“공무원이기 때문에 돈 버는 강의는 할 수도 없었어요. 오히려 교재를 배포하느라고 돈을 쏟아부었지.”
 
그러던 그의 일생에 전기가 마련됐다. 1980년 농협중앙회 검사부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 그에게 한 일본 식품업체가 ‘보리 가공법을 한국에 도입하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당시 인기가 폭발하던 보리음료 원료 가공에 뛰어들었다. 쏠쏠하게 재미를 보던 그에게 또 한 가지 대박이 터졌다.
 
그가 특허를 얻은, 현미를 쪄서 볶는 가공법이 음료회사의 눈에 띄었던 것. 현미음료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원료인 현미는 전부 남씨의 회사에서 공급했다. 매달 거액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지난해 그는 미련없이 회사를 처분했다. 회사의 인도대금을 남김없이 속기 보급에 쏟아붓기 위해서다.
 
“네 시간만 연습하면 느릿하나마 속기로 일기를 쓸 수 있어요. 30시간을 집중 연습하면 남의 말을 받아 적을 정도가 되죠. 속도가 강조되는 정보화 시대에 얼마나 편리한 일입니까.”
 
그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라고 써보였다. 한글로 52획. 그는 이 문장을 속기로 다시 적었다. 13획으로 줄었다. 한 획을 긋는 방향과 길이로 자음을 표시하고, 획 끝의 구부림으로 모음을 처리하므로 한 획이 한글 한 자에 해당한다. 이를 단순화한 약법(略法)을 사용하자 단 6획으로 줄어들었다.
 
“그렇죠? 정말 편하죠?”
 
그의 목소리가 신명을 띠었다.
 
그의 목표는 3년 내에 서울시내 20개 대학에서 속기가 교양과목으로 채택되게 하는 것. 최근에는 10억원대의 자택을 모교인 성균관대에 기증하기로 약속했다. 교내 속기연구소를 설립하고, 속기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다.
 
최근 그에게 또 다른 고민이 찾아들었다. 대학교에서만 속기를 배울 수 있다면, 일반인은 어떻게 속기를 배울 수 있을까. 그래서 그는 웹사이트(http://www.namcheonsokki.com/)를 열었다.
 
속기를 배우기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개자료를 다운받아 인쇄하고 자습할 수 있다. 혼자 시험을 보고 결과를 보내면 채점까지 해주는 ‘친절한’ 사이트다.
 
“오늘부터 댁에 가서 인터넷으로 바로 시작해 보세요. 얼마나 생활이 편리해지는지 곧 느끼게 될 겁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그에게서, 평생을 바쳐온 일을 값있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진지함이 느껴졌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남소장은
 
△1929년생
△1956년 남천식 속기문자 창안
△1959년 성균관대 법정대 법률학과 졸업
△1964년 상업계 고등학교 국정교과서 ‘속기’ 발간
△1967년 사단법인 한국속기교육협회 이사장
△1971년 농림부 서기관
△1978년 농협중앙회 검사부장
△1984년 식품가공업체 대경산업 대표
△2002년 남천속기연구소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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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람] "속기는 디지털 시대에도 쓸모 많아요"
본격 보급 나선 남상천씨
남상천 소장이 속기로 쓴 글. ‘친애하는 중앙일보 독자여러분! 갑신년도 마지막 문턱에 와 있습니다. 한해를 깨끗이 마무리짓고 희망찬 새해를 건강하고 활기차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는 내용이다.
"한글의 경우 빨리 쓴다 하더라도 1분에 63자를 쓰는 게 고작입니다. 그러나 말로 할 때는 웬만하면 250자 이상 말할 수 있지요. 이 차이를 없애주는 게 1분에 300자까지 기록할 수 있는 속기예요. 디지털 시대라지만 배워두면 메모를 하거나 일기를 쓸 때 편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남천속기연구소(www.namcheonsokki.com)의 남상천(75)소장이 사업하느라 잠시 손을 놓고 있었던 속기 보급에 다시 나섰다. 최근 속기교육 책자 세권을 펴낸 데 이어 속기 지도교사 양성 프로그램도 본격 추진하고 있다.

남 소장은 성균관대 1학년 때인 1956년 '남천식 속기법'을 창안했다. 57년 농림부 근무를 시작으로 20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속기교육에 정열을 기울였다. 63년 실업계 고교에 속기과정을 만든 데 이어 64년엔 문교부 검인정 속기교과서를 직접 썼다. 67년엔 사단법인 한국속기교육협회를 설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속기 지도교사 1000여명을 양성했다.

83년 식품제조회사인 대경산업을 창업한 그는 해태음료에 '보리텐' 원료를 공급했다. 볶은 현미 가공법에 관한 발명특허를 받은 뒤 이를 웅진식품의 '아침햇살' 주원료로 공급해 돈도 벌었다. 그러던 그가 2001년 잘 나가던 회사를 매각하고 다시 속기 보급에 눈을 돌렸다.

"속기를 배워 직업인이 되기 어려운 탓인지 주위에 속기학원이 눈을 씻고 봐도 없어요. 내가 죽으면 속기도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잠을 이룰 수 없더군요."

남 소장은 이에 따라 성균관대.천안대.홍익대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속기 교양강좌를 적극 지원하는 한편 대학 속기 지도자 양성 강좌를 내년 1월 17~22일 남천속기연구소에서 열기로 했다. 참가자에겐 교재를 무료로 제공하고 교육비 보조금 30만원도 지급할 예정이다. 중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속기를 가르칠 교사에 대한 교육도 내년 1월 26~28일 성균관대에서 실시한다.

남 소장은 속기의 지속적인 보급을 바라는 마음에서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10억원대의 집을 사후 모교인 성균관대에 '남천 속기장학금'으로 기증하기로 최근 대학 측과 약속했다.

글=이용택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lytak@joongang.co.kr>
2004.12.10 19:06 입력 / 2004.12.11 09: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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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연히 주간동아를 인터넷으로 보다가 '남천속기연구소'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반가워서 글을 보냅니다.
저는 남기옥입니다. 성함을 보니까 저희 할아버지뻘 되시는 듯 합니다. 저희는 의령남씨 집안이예요.
저는 벌써 19년째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이곳으로 유학을 와서 두 개의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이곳에 살면서 국제동시통역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어와 영어, 크로아티어와 스페인어 통역을 하고 있고, 각국을 다니면서 일을 하는 처지라서 많은 여행도 여행이지만 제 직업상 속기의 절실함을 느끼고 있었어요.
몇 년 전부터 속기책을 찾았지만, 어렵더군요. 그래서 회의에서 받아 적는 통역을 할 때나, 순차통역 중 중요사항을 적을 때 속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나름대로 저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시들로 속기를 대신했어요.
그러면서도 어디에서 속기에 대한 책을 구할 수 있는지, 한국에 여러 방면으로 알아도 보고, 큰 서점들에서 지인들을 시켜 문의를 했지만, 요즘 속기책을 찾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찾을 수가 없다는 대답이었어요.
그게 참 이상했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시내 곳곳에 속기학원이란 것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렇게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릴수가 있는가 싶었어요.
그러다가 이렇게 '남천속기연구소'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정말 기뻤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속기책을 구할 수 있는지요?
정말 제게는 절실한 속기라고 생각해요. 물론 영어속기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요. 그래도 주로 외국어에서 한국어로 통역을 하는 저에게는 한글 속기가 참 필요합니다.
늘 건강하시구요. 많은 젊은이들이 속기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좀 있으면 구정이라더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안녕히 계십시오.

2005년 1월 31일 이탈리아에서 남기옥 박사 드림
 
 
 
 
 
 
 
 
 
 
 
 
 
 
 
 
 
 
 
 
 
 
 
 
 
 
 
 
 
 
 
 
 
 
 
 
 
 
 
 
 
 
 
 
 
 
 
 
 
 
 
 
 
 
 
 
 
 
 
 
 
 
 
 
 
 
 
 
 
 
 
 
 
 
 
 
 
 
 
 
▶ 첨부파일 : 내일신문(2006. 2. 16)
 
 
 
 
 
 
 
▶ 첨부파일 : 내일신문(2006. 3. 9)
 
 
 
 
 
 
 
▶ 첨부파일 : 성대신문(2009. 9. 28)
 
 
 
 
 
 
 
 
 
 
 
 
 
 
▶ 첨부파일 : 동아일보(2017. 9. 21)